금계바위
제5경 금계바위
사랑을 갈구하는 암수 한쌍의 기기묘묘한 금계바위
백두대간 중 제1연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소백산천문관측소가 있는 곳에서 남동쪽으로 뻗은산줄기 동사면에 있습니다.
곰넘기재와 금계호 사이에 해당합니다. 금계바위 동쪽 골짜기는 십승지의 하나인 감록촌(監錄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록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감록(鄭監錄)에 기록된 피난지는 '풍기의 차암과 금계천' 두 물골사이로 임실·장선·부계밭·갓밭·용천동·쇠바리 일대입니다. 이곳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한 중심지, 즉 피난적지로 알려져 정감록 신봉자들이 처음에 정착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국론도 금계바위가 수탉의 벼슬을 닮은 바위의 형상에서 유래하였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모양은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위는 한자로 표기해서 금계암(金鷄岩)이라고도 합니다. 지명이 바위의 형태와 관련되어 있음은 금계바위에서 닭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있던 보석을 빼려고 하다가 바위에 깔려 죽은 나그네의 전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금계리·금계천·금계호는 관련 지명이다영주시 풍기읍에서 얼마쯤 가면 아담한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지금은 삼가동(三街洞) 이라 하나 옛날에는 금계동(金鷄洞)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곳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10승지지(十勝之地)로 100여년 전부터 많은 피난민들이 살고 있으며 앞으로 세계대전이 발생하면 이곳에서 인간의 씨를구할 수 있다고 신앙화(信仰化)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풍기읍과 그 일대에는 이북 출신의 많은 피난민들이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을 뒷산에는닭의 모양과 비슷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가리켜 "닭산"즉 [금계바위]라 부릅니다.
옛날 이 바위의가운데 부분에는 많은 금이 묻혀 있었다고 하며 또한 닭의 눈이 되는 부분에는 두 개의 빛나는보석이 박혀 이 마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동네의 수호신으로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곳을 지나던 어떤 나그네가 이 바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일확천금을노리고 가파른 절벽을 간신히 기어 올라가 금계암에 박힌 보석을 빼려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먹구름이 덮히기 시작하며 캄캄한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이 벼락으로 인하여 바위일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그 나그네는 바위에 깔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빼려고 한 보석은 묻혔는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에 이 마을은차차 가난해지기 시작하고 사람이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없어진 보석을캐내려고 이 마을에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바위의 형태도 닭처럼 보이지도 않은데, 다만 그 당시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많은 수정조각들이 금계암 부근에 흩어져있어 해질 무렵이면 낙조에 반사되어 절경을 이루며 가끔 여행객들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곰넘기재와 금계호 사이에 해당합니다. 금계바위 동쪽 골짜기는 십승지의 하나인 감록촌(監錄村)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감록촌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감록(鄭監錄)에 기록된 피난지는 '풍기의 차암과 금계천' 두 물골사이로 임실·장선·부계밭·갓밭·용천동·쇠바리 일대입니다. 이곳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한 중심지, 즉 피난적지로 알려져 정감록 신봉자들이 처음에 정착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국론도 금계바위가 수탉의 벼슬을 닮은 바위의 형상에서 유래하였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모양은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위는 한자로 표기해서 금계암(金鷄岩)이라고도 합니다. 지명이 바위의 형태와 관련되어 있음은 금계바위에서 닭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있던 보석을 빼려고 하다가 바위에 깔려 죽은 나그네의 전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금계리·금계천·금계호는 관련 지명이다영주시 풍기읍에서 얼마쯤 가면 아담한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지금은 삼가동(三街洞) 이라 하나 옛날에는 금계동(金鷄洞)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곳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10승지지(十勝之地)로 100여년 전부터 많은 피난민들이 살고 있으며 앞으로 세계대전이 발생하면 이곳에서 인간의 씨를구할 수 있다고 신앙화(信仰化)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풍기읍과 그 일대에는 이북 출신의 많은 피난민들이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을 뒷산에는닭의 모양과 비슷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가리켜 "닭산"즉 [금계바위]라 부릅니다.
옛날 이 바위의가운데 부분에는 많은 금이 묻혀 있었다고 하며 또한 닭의 눈이 되는 부분에는 두 개의 빛나는보석이 박혀 이 마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동네의 수호신으로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곳을 지나던 어떤 나그네가 이 바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일확천금을노리고 가파른 절벽을 간신히 기어 올라가 금계암에 박힌 보석을 빼려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먹구름이 덮히기 시작하며 캄캄한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이 벼락으로 인하여 바위일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그 나그네는 바위에 깔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빼려고 한 보석은 묻혔는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에 이 마을은차차 가난해지기 시작하고 사람이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없어진 보석을캐내려고 이 마을에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바위의 형태도 닭처럼 보이지도 않은데, 다만 그 당시의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많은 수정조각들이 금계암 부근에 흩어져있어 해질 무렵이면 낙조에 반사되어 절경을 이루며 가끔 여행객들이 찾아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