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양정사
제4경 금양정사(錦陽精舍)
마을회관에서 이동거리 : 2.0km 승용차 9분
금양정사는 16세기 중엽 유학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이 학문을 닦고 교육을 하던 곳입니다. 황준량은 이황이 행장(行狀)을 지을 정도로 아끼는 문인이었습니다.
황준량은 본관은 평해(平海), 자(字)는 중거(仲擧), 호(號)는 금계입니다. 중종 35년(1540) 문과(文科)에 을과(乙科) 제2인으로 급제한 후 성균박사(成均博士), 호조좌랑(戶曹佐郞)겸 춘추관서기관(春秋館記事官),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역임하였으며, 중종.인종(中宗 .仁宗) 양대 임금의 실록편찬에도 참가하였다. 고종 3년(1866)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습니다. 현재 신령 백학서원(白鶴書院)과 영주 욱양단소(郁陽壇所)에서 배향(配享)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구성은 좌측에 온돌방을, 우측에 대청을 설치하고 전면과 좌측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습니다. 건축 양식과 평면구성에서 지방 사림과 사대부 건축의 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황준량은 본관은 평해(平海), 자(字)는 중거(仲擧), 호(號)는 금계입니다. 중종 35년(1540) 문과(文科)에 을과(乙科) 제2인으로 급제한 후 성균박사(成均博士), 호조좌랑(戶曹佐郞)겸 춘추관서기관(春秋館記事官),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역임하였으며, 중종.인종(中宗 .仁宗) 양대 임금의 실록편찬에도 참가하였다. 고종 3년(1866)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습니다. 현재 신령 백학서원(白鶴書院)과 영주 욱양단소(郁陽壇所)에서 배향(配享)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구성은 좌측에 온돌방을, 우측에 대청을 설치하고 전면과 좌측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습니다. 건축 양식과 평면구성에서 지방 사림과 사대부 건축의 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용안내
소재지 : 영주시 풍기읍 금계로 245-13
건축주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건축시기 : 1500년대 중반
중건시기 : 영조연간
소유자 : 평해황씨 검교공파(관리자 : 황재천)
내용 링크 : http://blog.daum.net/ktckorea/14413285
건축주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건축시기 : 1500년대 중반
중건시기 : 영조연간
소유자 : 평해황씨 검교공파(관리자 : 황재천)
내용 링크 : http://blog.daum.net/ktckorea/14413285